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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실/참고자료

[다큐] 옥주기행 - 김응수 감독 GV (17.08.23)

131회 독립영화 쇼케이스

│음악영화, 영화음악 : ‘소리’에서 ‘노이즈’까지



 

옥주기행 The Journey To OKJU

131회_쇼케이스_자료집_옥주기행.pdf




김응수 │2016│Documentary│158min│DCP│color








 

┃시놉시스


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소리에 관심이 있었던 듯하다. 멜로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가장 기 억에 남았던 장면은 아름다운 주인공들의 사랑이 아닌, 강원도 정선 어딘가의 산골에서 노부 부가 부르던 정선아리랑을 남자 주인공이 녹취하던 장면이었다. 나는 그때 이 영화를 보면서 연애가 아닌, 왜 이 소리에 전율하는지를 내게 물었다. 그때 나는 겨우 30대였다. 그리고 우 연이 필연이 되는 것처럼, 이상한 마을을 알게 되었다.



┃연출의도


진도에서의 1년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소리는 서양음악에 심취했던 나에게 존재론적 내파 를 울렸다. 그것은 듣는-음악이 아니라 보는-음악이었고 복제 불가능한 순간의 음악이었다. 1년이 지나고서야 나는 내가 찍은 것들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그것은 유명한 사람 들의 무대공연이거나 보여주기 위해 연출된 행위들이었다. 삶 속의 소리는 이미 죽었던 것이 다. 나는 그것을 버리고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없다면 그 흔적이라도 찍고 싶었다. 보존해야 하는 것은 선택된 사람들의 명예가 아니라 삶 속의 예술인 것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나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제도는 소수의 문화권력을 만들고 많은 사람들을 예술로부터 소외시 켰다. 그래서 이름 없는 사람들을 만났다. 폐허의 풍경을 만났다. 무대와 객석이 사라진 난장 판을 만났다.

 


 

┃출연


한동심, 한남례 외 다수



┃스태프


연출/제작/촬영 김응수 테크니컬수퍼바이저/DCP마스터 박기웅

동시녹음 전호식(MINIMAL LAB), 이상윤

사운드믹싱 이주석(GOYO SOUND WORKS)

편집 김응수, 김백준



┃상영 및 수상내역



 

┃감독


김 응 수




┃필모그래피  및 상영⦁수상내역


제8회 DMZ국제다큐영화제 (2016)

제17회 인디다큐페스티발 (2017)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주최 <한국 독립영화 신작전: 관찰과 개입> (2017)

 

1966년 출생.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1996년, 90분, 감독/제작), 욕망(2002, 80분, 감독), 달 려라 장미(2005년, 86분, 감독/제작), 천상고원(2006년, 76분, 감독/제작), 과거는 낯선 나라 다(2008년, 90분, 감독/제작), 물의 기원(2010년, 80분, 감독/제작), 아버지 없는 삶(2012년, 80분, 감독/제작), 물속의 도시(2014년, 80분, 감독/제작), 옥주 기행(2016년, 158분, 감독/ 제작), 우경(2017년, 70분, 감독/제작)을 만들었다.

 


 

┃제작일지


1.기획


기획은 2014년 7월, 전작 <물속의 도시>가 끝날 때쯤 시작되었다.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아 주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었지만, 실제 행동에 옮긴 것은 이때였다. 무작정 진도로 향했다. 무작정이라는 말이 중요하다. 나는 연구를 많이 하는 것도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하지만, 행위에 의해서 우연히 만나는 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그리 많은 연구를 하지 않 는 편이다. 우여곡절과 모험을 즐긴다. 그리고 그것이 한 인간이 자기와 세계를 표현하는 지 점을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너무 많이 내가 세계를 정리하려고 하는데, 세계는 그렇 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학자적 풍모를 지닌 사람들이 내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자비로 채록과 비디오작업을 병행하여 기획안, 트레일러를 만들었다. 2014년 10월에 끝났다.


2.예산확보


2014년 11월부터 2015년 11월까지 진행되었다. 물론 이 기간에도 촬영을 위하여 진도에 드나들었다. 영화제, 독립영화 지원 프로그램, 영화진흥위원회 제작지원 등에 지원했다. 여러 번 떨어졌다. 촬영 진행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방송콘텐츠 진흥재단에서 소액의 지원금을 받 았고, 그 돈으로 또 촬영을 진행할 수 있었다. 감사한다.(너무 측은해 보여서 준 측면도 있 다.) 큰 금액도 중요하지만 아주 어려울 때 받는 지원은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이 영화 제 작의 전환점이 이 지원금이었다. 다행히 2015년 영화진흥위원회와 DMZ영화제의 제작지원 펀드를 받아 본격적인 촬영을 할 수 있었다. 세 단체의 지원금을 받았다고 해서 제작비가 풍 족한 것은 아니었다. 다큐멘터리 제작지원비는 그리 많지 않을뿐더러, <옥주기행>의 경우 이 동거리와 체류기간이 멀고 긴 영화이기 때문에 간신히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


3. 실패


내용적 난관에 부딪친 것은 1년이 지난 후였다. 찍은 것들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왜 그제서 그것을 깨달았는지는 모를 일이다. 영화에서 밝힌 데로, 그것은 날것인 척 하면서 고도로 세련된 느낌이거나, 반대로 비싼 척 하는 싸구려였던 것이다. 쉽게 이야기해서 무형 문화재의 공연이거나 방송카메라가 원하는 것을 알면서 행하는 사람들의 소리 연기였다. 나 는 내가 원하는 삶 속의 소리는 이미 죽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보아왔던 것은 어떤 것을 처음 접할 때 느끼는 신기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나 자 신을 속이며 1년을 보낸 것이다. 그런 유혹에 빠지지 않겠다고 경계했고, 다른 사람은 몰라 도 나는 훌륭한 눈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했지만, 10여 편의 영화를 했으면서도 잘 모르는 것이 영화였던 것이다. 쉽게 말해서, 쉽게 먹으려고 생각했던 감독이었다. 우리의 그런 처지 에도 불구하고 우리 촬영 팀의 장기체류는 현지 사람들에게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보통 하 루 이틀 머무는 촬영 팀을 보아왔던 사람들에게 역으로 우리는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풍경 이었다. 제일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아직 안 갔어?’‘또 왔어?’ 이런 질문이었다. 어느 덧 사람들과 친해졌고, 밥도 허물없이 먹는 사이가 되었다. 어느 집에서는 수십일 먹여주고 재워주기도 했다. 그러나 속의 고민은 깊어만 갔다.


4.기로


영화의 길이 보이지 않았다. 이미 찍었던 것으로도 영화는 되었으나, 그것은 자존심이 허락 하지 않았다. 자책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 책임이 아니었다. 그런 것만이 남아 있었던 것이 다. 이런 말들이 생각났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이 되어서야 난다.’ 항상 늦게 깨달 을 수밖에 없다. ‘진리는 오류를 통해서만 도달한다.’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는 항상 소 급적으로만 알게 된다.’ 그러다가 촬영을 다시 진행할 수 있었던 작은 사건을 만났다. 어떻 게 하나 고민하며 진도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동백타령이 들렸다. 돌아보니 한 노인이 사륜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 바다를 보며 녹음기의 소리를 듣고 있었다. 돌아가실 날 이 오늘 내일인 듯했다. 야윈 손가락으로 희미하게 박자를 쳤다. 바로 그 할아버지를 찍으며 생각했다. ‘이런 것이 흔적이구나. 찾으면 뭔가 있겠구나. 육체에 남아있는 소리의 흔적들. 하루에 1분을 찍을 수 있다면, 내가 100분의 영화를 만든다면 100번 이런 것을 찾으면 되 겠구나. 운이 좋으면 한 번에 10분도 찍을 수 있겠지.’ 그때까지의 촬영만으로도 녹초가 되 었는데 다시 영화를 시작한다는 결심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해보기로 결심했다. 그 때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괴로웠다. 그래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견디면 언젠가 길이 열린다 는 영화적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5.힘든 과정


그러나 삶의 소리를 찾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내가 찾는 것이 그 사람들에게조차 낯설었던 것이다. 내가 찾는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의미는 ‘소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되어 돌 아왔다. 유명한 것이 잘하는 것이 되었던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소리의 세계를 깊숙 이 알지 못하게 하는 기득권적 권력이 있다. 이 말은 아주 나쁜 의미로만 쓰인 것은 아니다. 그들도 기예가 높고 매력적인 사람들이다. 그리고 지난한 부침과 정치적 행위를 통해 그 자 리에 있는 것이다. 국가 정책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국가에 의해 선택되어야만 내 가치를 부여받는 현실. 인간사가 다 그런 것일까?(이것은 영화의 도입부에 감독의 독백으로 나타나 있다. 이 내용이 다큐멘터리의 소재로 재미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 관심은 삶의 소리의 아름다움이었다. 2분의 독백이지만, 나는 이 도입부의 독백이 하나의 영화이고 다음 156분이 하나의 영화가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소리를 대표한다. 그러니 우리를 통해서 너의 관 심을 해결하라.’ 번번이 그런 벽을 느꼈다. 몸은 피곤하고 마음은 바쁜데 어떻게 해야 하 나. 제작비도 다 써가고 있는데.


6.기적


한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은 처음 진도를 방문할 때부터 어느 공연 자리에서 만난 사람이었 는데 북을 쳤다. 나이는 내 또래였으니 아주 젊은 축에 드는 사람이었다. 이름은 김남용, 영 화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 사람도 나를 자주 봤으나 우리는 깊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나는 그 사람을 만나자고 했고, 우리는 임회면 소재지(영화에서는 십일시라는 현지지명으로 사람들이 말한다. 말죽거리 같은 말. 내가 십일시를 자연스럽게 말하게 되었을 때, 나도 놀랐다.)의 작은 통닭집에서 만나 맥주를 마셨다. 나는 내 고민을 이야기했다. 그냥 1년의 촬영이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린 것에 대한 하소연이었다. 또한, 그 사람도 현지 사람 중의 하나였기에, 내 하소연이 오해를 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내 가 비판하는 부류에 그 사람이 포함되어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고, 작은 지역 사회에서 그 사 람의 지인이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건 일종의 모험이었다. 나는 승부수를 던 진 것이다. 그 사람이 구원자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 하소연은 ‘문화정책이 엘 리트 중심주의로 권력화 되었다. 삶 속의 소리는 죽었다. 소리 박물관에 온 것 같다. 소외당 한 사람들 중에도 마스터가 있을 것이다. 그들은 어디에 있느냐? 왜 내 눈에 안 보이느냐?

왜 사람들에게 물어도 그런 사람을 모르느냐? 이건 올바른 보존정책이 아니다.’ 대충 이런

 

말이었다. 놀랍게도 그 사람은 내 편이었다. 서로 조심했던 것이다. 그 사람은 내가 무엇을 원했는지 몰랐고, 여느 촬영 팀처럼 이국적인 풍경을 찍고 가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사람도 나와 같은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었고, 그것이 국가 문화정책과 상반되는 것이어 서, 지역사회에서 조심조심 자신의 과제를 수행하고 있었다. 잊힌 마스터들을 발굴하고, 소리 를 삶 속으로 돌려놓기 위해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소리와 악기를 배우는 모임을 다방면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가 말하기를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몰랐다. 그러면 물어물어 같이 찾아보자. 나도 그런 사람들을 자료로 남기는 작업을 하고자 한다.’ 기적 같은 일치였 다. 그 맥주가게 이름은 ‘모아 통닭’이다. 한 편엔 잡화를 팔고, 한편에 탁자가 있는 정감 있는 곳이다.


7.다른 세계로


2015년 8월부터 2016년 4월까지. 영화를 보면 이런 장면들이 처음부터 쉽게 얻어질 것 같 지만, 그렇지 않다. 수업료를 치러야 했다. 이상하리만치 일은 술술 풀렸다. 한 사람을 찾아 찍으면 그 사람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직감으로 알아챘다. ‘누구를 찾아가 봐라.’ 그러 면 그 사람이 또 다른 모임을 가르쳐주었다. ‘오늘 송년회 자리가 있는데 한 번 와 보시 오.’ 거기에 가서 무엇을 찍으면 거기 온 사람 중 하나가 또 다른 것을 소개해주었다. ‘누 가 내 집에 놀러오기로 했는데, 찍어 보겠는가?’ 그들은 나를 직감으로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 겹을 뚫고 다른 세계로 들어가기가 그렇게 힘들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지 난할 것만 같았던 새 작업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진행되었다.(물론 허탈한 경우도 많았지만.) 찍을 때마다 삶의 생동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주 많지는 않았다. ‘진도에 가면 어디서나 소리를 만난다.’ 이 말에는 일면의 진실과 허위가 있다. 물론 소리는 많다. 어떤 관점에서의 소리를 생각하느냐의 문제다. 삶의 소리는 거의 없다.(위험한 단언이지만.) 아마 이 영화가 마지막 녹음이 아닐까한다.(문화부예산으로 제대로 월급주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 지 않는다면, 어느 미친 자가 이런 짓을 또 할까?) 내 스스로 자긍심을 느껴도 되는 부분이 다. 내가 찍은 마스터들, 프리마돈나들, 5년 내외로 이 세상에 계시지 않을 분이 많을 것이 다. 항상 그 사람들의 심성의 결을 그리워한다. 그들 자신은 세상을 욕하지 않는다. 나를 기 특하게 바라보며 최대한 잘 해주시려고 하셨다.(바다에서 고기를 잡으며 노래한 분은 영화에 서 ‘이게 최고의 고기’라고 혼잣말했던 감성돔을 회 떠서 나에게 주었다. 영화를 볼 때마 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런 멋진 추억이다.)

 


 

8.촬영종료

 

영화는 2016년 4월에 촬영을 종료했다. 나는 어떻게 영화의 끝을 맺을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1부가 죽음, 2부가 삶이니, 3부는 디오니소스 축제가 되면 금상첨화였다. 그러나 모 두 알고 있듯이 한국의 축제는 무대공연과 러시아댄서의 춤, 불꽃놀이가 주류를 이룬다. 익 히 4월에 신비의 바닷길 축제가 열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첫 해 촬영에서 실패한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이 축제만의 특징이 있었다. 객석과 무대의 경계가 무너지고 사람 들이 무아지경에 빠지는 디오니소스적 축제의 원형이 나름 남아있었다. 아마 첫해의 우여곡 절이 없었다면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지난 촬영을 훑어보면서, 어느 지점에 서 어느 시각에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지를 예상했다. 그리고 두 번째 촬영에서는 그 부분만 을 집중적으로 찍었다. 축제는 1km가 넘는 공간에서 열리며 수만의 인파가 몰렸다. 그리고 5일 동안 비슷한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나는 하루에 한 지점에만 카메라를 고정하고 그 시점 만을 찍고, 다음 날에는 다른 시점에서, 다음 날에는 다른 시점에서 찍는 방식으로 비슷한 상황을 반복해서 찍었다. 나중에 그것을 한데 모으니 하루에 찍은 것이 되었다.(이 다큐멘터 리는 거짓이다! 그것은 여러 날이 하루가 된 것일 뿐이다. 서너 개의 카메라를 돌릴 수 있었 다면 진실을 찍을 수 있었을까? 그러나 진실은 사실이 아니다. 진실은 현실과는 좀 다른 어 떤 것이다.) 그리하여 영화는 쉽게 끝이 났다.


9. 후반작업


2016년 4월에서 8월까지 편집과 믹싱, 색보정과 dcp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걱정했 던 소리의 질은 대형 극장에서 시연을 해본 결과 괜찮았다. 지금 생각하건데, 동시녹음을 잘 해서가 아니라 소리 자체가 좋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전문가와 좋은 마이크가 동원되기는 했다. 그렇다고 안 좋은 소리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기계적으로 빼어난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소리가 나쁘면 한계가 있는 것이다. 난생 처음으로 겁 없이 음악영화, 그것도 소리 영 화를 해보았고, 2016년 9월 초연을 했다. 진동, 내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 이것이 없으면 학술자료로나 쓸 이 영화, 그것을 초조히 기다렸다. 그것을 느꼈다고 흥분하는 사람도 있었 고, 그냥 덤덤히 관찰과 구경을 한 사람도 있었다.


10. 인용

 

영화의 각 부를 구성하는 초미에는 경구들이 나오는데, 이름 없는 사람의 인터뷰 속에서 따 온 말이 1부의 문장이다. 86세의 노인이 있었는데(지금은 88세)가 되셨을 것이다. 정말 본인 이 소리를 잘했다고(미쳤었다고) 하셨다.(영화의 도입부에서 콩을 고르는 장면.) 한사코 거절 하다가 육자배기를 하셨는데 그만 고음에서 꺾여버렸다. 목소리의 녹을 제거하는 데는 힘이 필요한데, 그 힘이 부치신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소리하는 장면은 빠졌다.(영화는 그 누추함 을 폭로하거나 시간의 복수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노쇠함에도 불구하고 아름다 운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그 한계를 넘지 못했다. 그 노인이 이런 말을 했다. ‘소리는 새 주인을 찾아 떠난다. 떠났다.’ 그것이 1부의 경구가 되었다. 2부는 고은 시인 의 시 중 한 문장인데, 눈이 미친 듯이 오던 겨울, 꼼짝달싹 못하는 상황, 여관에서 창을 보 며 그 문구를 떠올렸다.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영화에의 의지가 샘 솟는 구절이다.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었을 때이다. 영화를 편집할 때 정신이 없어 그 출처 를 제시하지 못했다. 고은 시인의 ‘문의 마을에서’라는 시이다. 3부의 ‘새는 노래한다.’ 는 원래 ‘새는 자유, 자유, 노래한다.’라고 쓰고 싶었다. 파블로 카잘스가 카탈루냐의 민요 ‘새의 노래’를 연주하며 한 말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는 ‘카탈루냐의 새들은 peace, peace, 노래한다.’고 말했다. 그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카탈루냐의 독립과 평화를 염원하는 한 예술가의 품격으로 들렸지만, 내가 그렇게 흉내 내는 것은 유치하다고 생각해서 ‘새는 노래한다.’라고 썼는데, 지금 생각하니 ‘새는 자유, 자유, 노래한다.’라고 쓰는 것이 좋았 을 것도 같다. 자유, 자유.

 


 

 리 뷰



옥주기행의 음악적 체험에 대하여

권은혜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옥주기행>(2016)은 음악 영화, 정확히는 음악 다큐멘터리다. 하지만 통상적인 음악 다큐멘터리와는 차이가 있다. 다수의 음악 다큐멘터리가 특정 음악인이나 그룹을 주인 공으로 그를 따라가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옥주기행>은 시작 부분에서 감 독이 밝혔듯 유명한 사람의 무대 공연이나 연출된 행위들이 아닌 “삶 속의 소리”를 담 은 영화다. 이 때문에 특정 인물의 소리를 들을 때조차 그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고 연 출된 축제의 장에서조차 즉흥적인 순간들을 담아낸다. 즉, 영화의 주인공은 진도의 소 리 그 자체다. 감독은 영화에 관해 이야기하는 한 자리에서 “<옥주기행>은 소리의 아 름다움을 담은 영화”라 말했으며 어떤 평론가는 이 영화가 “김응수 판 ‘잃어버린 소리 를 찾아서’”라고 했다. 그러나 <옥주기행>을 주류역사에서 배제된 진정한 소리를 담은 영화라거나 주인공이 ‘소리’인, 조금 독특한 음악 다큐멘터리로 이해하는 것은 영화를 절반만 이해한 것이다. 이 영화가 음악 영화인 까닭은 무엇보다 영화의 구조가 음악적 이기 때문이고, 관객으로부터 이끌어내는 감응 역시 감각적이고 즉각적인 것으로서 음 악의 그것과 닮아있기  때문이다.1)


1) <옥주기행>의 이러한 음악적 특성을 제대로 경험하기 위해서는 극장관람 혹은 그와 유사한 형태의 관람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는  먼저, 영화가 선사하는 감정과  감각의 롤러코스터를 멈추  지 않고 선형적으로 경험해야 한다는 의미에서이고, 또 다른 이유는 후반부에 이르러 압도적으     로 중요해지는 사운드의 역할 때문이다.  극장이 아닌 공간에서  이와  유사한 경험을 얻기 위해서 는 고성능의 오디오나 헤드폰이 필요하고, 앉은 자리에서 멈추지 않고 158분 동안의 관람을 유 지해야 한다.  영화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많은 클래식 애호가들이 음악당을 찾는 이유도 같은 이    와  이유일 것이다.

 

<옥주기행>을 극장에서 처음 본 것은 올해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였다. 영화가 중반 부를 향해 달려가고 있을 무렵, 보이는 풍경과 들려오는 소리가 걷잡을 수 없는 마음 의 동요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감독이 그 흔적이라도 찍어 보여주고 싶었다는 “삶 속 의 소리, 삶 속의 예술”은 죽음을 암시하거나 죽음과 너무 가까이 있었다. 영화의 전 반부에서 감독이 찾아다닌 이름 없는 소리꾼, 예술가들은 나이 들고 노쇠하였으며 홀로였다. 그들은 소리를 하던 중 연신 침을 삼켜 마른 목을 가다듬고, 소리가 끝나면 숨   길 수 없는 한숨이나 탄식을 내뱉었다. 오랜만에 소리를 하고 나니 기분이 어떠하냐는 감독의 질문에는 “왜 오늘 같은 날이 나한테 왔나.”라는 회한 어린 답이 돌아왔다. 영 감님과 둘도 없던 벗은 세상을 떠났고, 소리의 후렴을 받아주는 이도 없었다. 이윽고 두 번째 마태 수난곡과 진도 바다의 광경이 펼쳐졌다. 북받치는 감정과 목멤은 기계의 버튼이 눌린 것과 같은 속수무책의 반응이었다. 어둠 속에서 마주한 거대한 스크린 속 진도 바다는 영화의 전반부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죽음의 암시들의 정점이었다.2)


2) 진도 바다와 마태 수난곡이 함께 등장하는 장면이 끝나고 나서도  영화는 바다를 보여준다. 배  를 타고 들어간 섬은 조도라고 하는, 세월호가 침몰한 조도면에 속해 있는 작은 섬이다.  이곳에     서 카메라는 한 어부의 배에 올라타 그가 하는 소리를 담은 후, 거칠고 조용한 바다의 모습을  한동안 바라본다.  이것이 “옥주미용실” 이전,  <옥주기행> 전반부의 마지막 장면이다.


그러나 영화는 정확히 러닝타임의 중간지점인 옥주 미용실 장면을 기점으로 전환된다. 후반부의 소리에는 에너지가 있었다. 활기에 찬 생의 소리다. 전반부의 소리가 곧 사라 질지도 모를 소리들을 찾아가 수집한 것이었다면, 후반부의 소리는 살아 움직이고 있 는 소리들에 슬쩍 마이크를 갖다 댄 것이었다. 소리를 하는 이들은 아직 중장년층의 사람들이며 혼자가 아니었다. 자연스레 이 소리들 뒤에는 추임새와 박수와 같은 다른 소리들이 뒤따랐다. 노인들의 사물놀이조차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는 것이고, 젊은이들 과 노인들이 뒤섞여 다가올 축제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 활기는 그대로 축제의 난장으 로 이어지며 영화는 그 비장의 카드를 드러내고 있었다.


영화의 마지막 40여 분 동안 이어지는 바닷길 축제 장면은 서서히 고막을 자극하기 시작하여 심장박동수를 높였고, 손끝과 발끝이 가만히 있지 못하게 만들었다. 소리들이 주는 몸의 진동은 이성과 감정의 회로를 중단시키고, 디오니소스적 도취의 상태로 이 끌어갔다. 이는 앞서 보여준 죽음의 슬픔을 극복하거나 긍정하는 차원의 것도, 애도와 명복을 비는 차원의 것도 아니었다. 살아있는 자들의 감각을 일깨워 흔들고, 그럼으로 써 살아있는 자가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상영 뒤 진행하기로 되어있는 관객과의 대화를 위해 준비해간 질문지가 아무 소용이 없어짐을 깨달아가고 있었지만, 그 전율과 도취에 나를 맡길 수밖에 없었다.


이 관람 후 내린 결론은 <옥주기행>이 그 자체로 ‘죽음과 애도’, ‘삶과 구원’ 두 악 장으로 이루어진 한 곡의 음악이라는 것이었다. 1악장은 관객의 감정을 건드린다. 노쇠 한 소리와 신체적 제스처들로 죽음을 암시하고 후반부에서 진도의 바다와 함께 마태 수난곡을 들려줌으로써 이를 애도한다. 2악장에서는 관객의 감각을 자극한다. 건강하 고 활기 있는 육체에서 나오는 소리로 삶을 노래하고, 몸의 진동을 느끼게 하는 축제 장면을 통해 이를 체험케 한다. 그리고 2악장 후반부에서 김응수가 가지고 있는 구원 의 비전을 만난다. 이는 경건하고 외로운 예배당에서의 기도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가 제시한 구원은 신명 나는 굿판, 축제, 춤, 도취, 무엇보다 인간의 신체를 빌어 이루어진다. 위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구원. 이성이나 감정이 아닌 감각을 통한 구원. 삶의 일상적 구속과 한계를 파괴해 버리는 도취. <옥주기행> 이라는 음악은 진도 앞바다에서 펼쳐지는 디오니소스 제전을 불러온다. 삶만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삶만이 우리를 구원에서조차 해방시키리라. 이러한 비전을 그는 어디에서 찾아냈을까. 아마도 내가 이해하지 못한 이 영화의 절반, 진도의 소리가 그에게 전해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옥주기행>을 감상하는데 진도의 소리들에 대한 교양이 없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영화의 진정한 미덕은 이것들 없이도 소리의 힘, 소 리의 진수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옥주기행>을 다시 한 번 극장에 서 만날 날을 기다린다.


옥주기행의 음악적 체험에 대하여 – 2


이상은 <옥주기행>을 PC(스크리너)로만 보았다가 극장에서 본 후, 그 관람을 바탕으 로 한 매체에 기고한 리뷰를 요약한 글이다. 다소 긴 저 글을 인용한 것은 내가 인디 다큐페스티발에서 느꼈던 진동과 전율을 오늘 이 자리에 온 관객들도 느끼기를, 그리 고 이 글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길 바라기 때문이다.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의 관람은 이전에 본 영화들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음악 영화가 아닌 ‘영화의 음악화’라 할 수 있는 새로운  체험이었고 또한  압도적인 것이었다.


<옥주기행>을 다시 한 번 극장에서 볼 날을 기다리던 내게 그 날이 왔다. 서울아트시 네마에서 진행한 “한국 독립영화 신작전 : 관찰과 개입” 기획전을 통해서였다. 마치 내가 좋아하고 귀에 익은 곡을 듣는 연주회에 가는 마음으로 극장으로 향했다. 인디다

 

큐페스티발에서의 관람 이후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옥주기행>은 꼭 극장에서 보아야 하는 영화라며 입이 마르도록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이날 극장에 는 나의 흥분된 선전을 들어주었던 몇몇 사람도 와있었다. 내가 감독인 마냥 긴장되었 다. 오늘 이후, 이 사람들과 함께 <옥주기행>의 진동과 전율에 대해, 영화라는 매체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4D, IMAX, 4K, VR과 같이 영화에 도입되고 있는 테크놀러 지에 대해서까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마음이 들떴다. 한편으로는 이 사람들이 나와 같은 진동과 전율을 느끼지 못하면 어쩌지, 라는 불안감도 있었다. 그런데 이날의 상영은 앞선 예감들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날 <옥주기행>을 관람하며, 나는 영화의 전반부가 의도하는 감정의 이입에는 도달했 으나(이는 다수의 영화가 그리 어렵지 않게 해내는 것이다), 후반부가 의도하는 감각적 체험, 즉 진동과 전율에는 이르지 못했다. 후반부가 진행되는 내내 같은 상태에서 맴 돌았고, 결국 영화가 끝날 때까지 전율과 진동을 일별하지도 못했다. 클래식 애호가인 친구가 한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회를 다녀와서 내게 해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바 이올리니스트는 연주 내내 천국의 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어.” 이날의 상영은 들어갈 수 있을 듯 말 듯 나를 천국의 문 앞에 서성이게 했고, 결국 문은 열리지 않았다. 지 난번 관람에서 느낀 전율과 진동이 가짜였단 말인가? 그렇지 않았다. 여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극장의 오른쪽 사운드의 상태와 한 관객이 낸 소음, 그리고 결 정적으로는 사운드의 볼륨이었다.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흐의 마태수난곡이 나온다. 이 곡은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모인 합창으로 이루어진 성악곡이다. 영화 대부분을 차지하는 진도의 소리들 이 나올 때는 괜찮았지만, 마태수난곡이 나오자 오른쪽 사운드에서 꽤 심한 갈라짐이 있었다. 나는 ‘영화의 중반부에 나올 두 번째 마태수난곡 또한 갈라져서 들리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이는 영화에의 몰입을 약간은 방해했다. 더 한 것은 내 근처에 앉 은 사람이 주기적이고 지속적으로 내는 바스락거리는 소리였다. 비닐봉지에 들어있는 무언가를 먹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소리는 영화의 절반이 지나고 있는 시점까지 지속되 었고 참지 못한 나는 그 사람에게 다가가 “조용해 주세요.”라는 이야기를 했다. 마태 수난곡도 다 지나갔고,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이윽고 영화의 후 반부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끝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비극적 결말이었다.

 

극장에서 빠져나오면서 나는 무언가를 알아챘고, 관객과의 대화를 위해 극장을 찾으셨 던 감독님께 여쭈었다. 예상한 대로였다.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상영했을 때에는 감독님 의 요청으로 영사실에 부탁하여 후반부 바닷길축제 장면의 한 지점에서부터 미세하게 볼륨을 높였었다. 하지만 이번 상영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하셨다. 나는 다소 흥 분하여 볼륨 조정을 하지 않으신 것에 대하여 감독님을 나무랐다. 이 영화가 내가 생 각하는 대로 음악이라고 가정해본다면, 사운드의 강도 조절은 정확하고 감동적인 연주 를 위한 필수적 요소이다. 마치 연주자가 악보에 있는 셈여림표를 따르는 것과 같이 말이다. 물론 영화제작의 후반 작업에서 셈여림의 조절이 잘 이루어졌다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 그렇지 못했다. 그렇다면 연주 시에는 악보를 지키며 연주를 해야 하는 것이 다. 이는 그 음악이 하고자 하는 것을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충족되어야 하는 조건이다.


이날의 상영을 연주회에 비유하자면 다음과 같다. 기쁜 마음으로 평소 좋아하고 귀에 익은 교향곡을 들으러 음악당을 찾았다. 그런데 전환지점 혹은 클라이맥스에 등장하여 곡을 환기하는 주요한 역할을 하는 심벌즈와 같은 타악기에 금이 가 있었고(마태수난 곡이 갈라지는 오디오), 내 근처에 앉은 누군가는 계속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 었으며, 연주자들이 포르티시시모(fff : 엄청 강하게)로 연주해야 하는 클라이맥스 부 분을 다른 부분들과 동일한 메조포르테(mf : 조금 강하게)로 연주한 것이다. 한마디 로 말하자면, 망한 연주회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음악적 체험이긴 하다.3)


3) 영화는 기계 복제 예술작품이다.  이 이야기를 한 벤야민의 말대로 기계 복제 예술 작품들은  이전 시대의 작품들처럼 그 작품이 있는 특정한 장소에 보고 느낄 수 있는 일회성, 유일성이 파괴되었으므로 더 이상 아우라를 갖지 않는다. 즉, 기계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들에서는 아우 라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개별 개별의 경험적 차원에서 아우라를 생각해본다면, 아우라는 여전히 작동한다. 영화 역시 그 영화를 본 첫 상영/경험이 주는 유일 무이성이 있다. 그런데 <옥주기행>처럼 음악적 속성을 지닌 영화의 경우, 심지어 좋은 조건  에서 정확하게  연주된 상영이 첫 관람인 나에게는 이  영화가 준  아우라가 대단했다.  그러므  로 그 아우라가 파괴된 두 번째 관람은 나로 하여금 기계 복제 시대의 아우라적 체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물론, 이 이야기가 전부를 설명해주진 못한다. 시끄럽고 사람이 많은 전철 안에서 번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다가도 진동과 전율을 느낄 때가 있다. 즉, 외적인 요소가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감상은 당시 내 내면의 상태가 어떠냐에 따라, 전철이 해 뜰 무렵의 한강을 지나가고 있는데 그 풍경을 마주한 내 마음에 어떠한 파문이 이느냐에 따라  분명히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쇼케이스 상영이 가까워져 올수록 긴장과 불안이 올라온다. 이번 상영에서는 천국의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첫 상영에서 느꼈던 진동과 전율을 느낄 수 있을까. 들 어가고 싶고, 느끼고 싶다. 이는 청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이고(물론 <옥주기행>에는 청각적 쾌락을 강화하거나 청각과 분리할 수 없는 영상들이 존재한다.), 역시 영화보다 는 음악에서 느끼는 것이다. 영화가 상영될 한국영상자료원 2관의 사운드가 마태수난 곡의 합창을 제대로 들려줄 수 있는 상태이기를, 소음을 지속적이고 주기적으로 내는 관객은 없기를, 영사실과 볼륨 조절에 대해 미리 소통할 수 있기를, 그래서 첫 상영에 서 느낀 진동과 전율을 다시 한 번 경험할 수 있기를. 이렇게 초긴장 상태로 관람하는 내가 느낄 수 있다면 다른 대부분의 관객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