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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실/공부방

<블랙 스완>..이분법에 의한 해석

 

1. 흑백의 단순구조

'대런 아로노프스키'...

마치 소련인을 연상케하는 이 요상한 이름의 감독은, 의외로 뉴욕 브룩클린 태생(1969년생)이다.

내가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을 기억하는 것은 <레퀴엠>(Requieam For dream)을 보고나서의 충격 때문인데, 

당시 감독은 이 작품에서 독특한 미장센으로 마약에 찌든 주인공들이 파국을 맞는 과정을 암울하게 그려내면서 

많은 영화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바 있다.

하지만 <천년을 흐르는 사랑>이 흥행에 실패하고 난 뒤 의기소침하던 그는, 

성형 실패등으로 대인 기피증세까지 보였던 '미키 루크'를 캐스팅하면서 <더 레슬러>를 찍게 된다.

당시 <더 레슬러>는,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랜디'와 '미키 루크'의 삶이 많은 부분 오버랩되면서 

관객들에게 보는 내내 커다란 감동과 눈물을 선사했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나탈리 포트만과 손잡고 '발레'를 소재로 한 영화에 눈을 돌렸다.

영화의 외피는 성공을 향한 발레리나 소녀의 노력과 동경을 다룬다.

하지만 외피를 한꺼풀 걷어내면 완벽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스스로 파멸하는 주인공의 광기와 망상, 

라이벌을 향한 질투와 동경이 빼곡하게 전시되어 있다. 

겉으로 화려하게 보이는 발레리나의 욕망을 들추면서 인간 내면에 감춰진 양면성을 조명하는 셈이다.

이를 위하여 <블랙 스완>은 철저하게 고전적인 이분법에 기초하며 내러티브를 진행시킨다.

선과 악, 청순과 퇴폐, 순결과 관능을  흰색과 검은색에 비유하는 단순 구조를 선택한 것이다.

이분법에 의한 흑과 백은 밝음과 어둠, 상반된 이미지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밝음이 희망과 생명력을 의미한다면, 어둠은 좌절과 죽음, 공포 등의 이미지를 갖는다.

하지만 <블랙 스완>에서의 검정색은 이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백조의 호수'에서 백조와 대비되면서

치명적인 유혹, 거침없는 관능 등으로 치환된다.

언뜻 흑백의 단순 구조로 관객들을 설득시키려는 감독의 이런 전략은 무모하게까지 보인다.

굳이 비평가의 시선을 빌리지 않더라도 흑조-백조와 같은 이분법적인 설정은 식상할 뿐 아니라

도식적이고 촌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감독은 영리하게도 이런 구조에 복잡한 '인간 내면 심리'를 덧칠하면서

자칫 무료하게 느낄 수 있는 스토리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하긴 지금까지 발표된 그의 영화들은 소위 '예술성' 운운하며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어려운 영화'는 아니었다.

단순한 줄거리에 정교한 테크닉, 그리고 탁월한 편집능력 등이 가미되면서

관객들의 흥미를 끄는 그런 방법을 고수하였던 것이다.

이번에 발표된 <블랙스완> 역시 예외는 아니다.

흑백의 색상을 이용하여 선악을 구분하고, 

순수미의 극치인 발레에 스릴러라는 이질적인 요소를 결합하면서 이야기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이런 이분법적인 사고는 <블랙 스완>에 등장하는 인물에게까지 어김없이 적용된다.

완벽한 경지에 이르고자하는 니나의 집착은 흑조와 백조라는 대조적인 모습을 통하여 부각시켰고, 

니나의 조력자로서 엄마 에리카와 뉴욕 발레단장 토마스는 남녀라는 성(性)적인 차이 외에도

지도 방법에서 확연한 대조를 보인다.

니나가 닮고 싶어하는 릴리와 베스 또한 마찬가지다. 

둘은 여러가지 상황에서 커다란 대조점을 보이며 극적 긴장감을 높여주고 있다.

이처럼 <블랙 스완>은 이분법적인 구조로 현실과 환상,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들면서

완벽을 추구하는 발레리나의 집착을 세밀하게 직조해낸다.

따라서 이번 리뷰는 영화 곳곳에서 활용되는 이분법적인 도식을 찾아봄으로써 

영화의 이해를 돕는 방향으로 지면을 할애하고자 한다..

 

 

 

 

2. 대척점에 선 인물탐구

 

 

전직 발레리나 출신으로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한 대신

딸의 성공을 위해 헌신을 다하는 엄마 에리카(바바라 허쉬)와 함께 살고 있는 니나는 뉴욕 발레단에 소속되어 있다.

그녀의 꿈은 베스처럼 '백조의 호수'에서 프리마돈나 역을 맡는 것.

'호두까기 인형', '잠자는 숲 속의 미녀'와 함께 차이코스키의 3대 발레 음악으로 손꼽히는 '백조의 호수'.

이 작품의 프리마돈나는 악마의 마법으로 백조가 된 오데트 공주와

왕자를 유혹하는 사악한 쌍둥이 자매 오딜을 동시에 연기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발레리나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지만 선뜻 다가설 수 없는 자리다.

니나 역시 특유의 순수함으로 연약한 백조 오데트엔 적임자로 일찌감치 점찍혔지만

흑조 오딜을 연기하기엔 도발적인 관능미가 부족하다는 평을 받는다..

이때 백조의 의미는 순수함의 결정체로 아직까지 여인(女人)에 이르지 못한 성숙하지 않은 소녀를 상징한다.

따라서 니나가 집착하는 흑조의 이미지는 완벽한 예술에 이르는 필연의 과정이자, 

소녀에서 여인으로의 성숙의 과정이라고 봐도 전혀 무리가 없다.

순수한 백조에서 점차 사악하고 관능미 넘치는 흑조로 변해가면서

니나는 성공에 대한 욕망과 집착으로 망상과 편집증을 겪는다.

하지만 변신의 과정을 무조건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

니나의 변신은 어쩌면 순수와 관능, 아름다움과 광기, 선과 악이 하나로 융합되는 과정이자, 

앞서 언급처럼 소녀에서 여인으로의 성숙에 이르는 필연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애벌레가 여러번의 탈피를 거쳐 아름다운 나비로 성장하듯 

나니의 변신은 자신을 옥죄던 통제의 손길에서 벗어나 자유 의지를 갈구하는 성숙된 욕구에서 비롯되었다..

이 과정(백조에서 흑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빨간색을 차용한 감독의 센스는 참으로 놀랍다.

흑과 백의 선명한 경계 위에 놓여진 빨간색.

이때 빨간색은 생리혈, 혹은 립스틱과 오버랩되면서 자연스럽게 성숙된 여인을 떠올리게 만든다.

하지만 소녀에서 여인에 이르는 길은 지금껏 자신이 가졌던 많은 것들을 버려야한다. 

벽면을 장식했던 수많은 인형들을 버려야하고, 잠잘 때 자장가처럼 들었던 오르골을 버려야하며, 

엄마의 애정(혹은 지나친 간섭)도 버려야만 한다. 

그리고 버린만큼 점점 짙어져가는 빨간색 등에 상처가 덧나기시작하고, 손톱이 피로 물든다. 

손가락 살점이 뜯어져 나가는가하면 검은 옷을 입은 또 다른 자신과 마주치기도 한다.

따라서 이때 빨간색이 주는 의미는 '변신의 댓가' 또는 '상흔'으로 치환되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감정이입을 돕는다.

영화에서는 이런 과정을 순수한 여성에서 위험한 존재로 탈바꿈하는 것처럼 그리고있지만, 

이는 어쩌면 변화를 두려워하는 니나의 내면이 만들어낸 환상일지도 모른다..

 

 

 

젊은 나이에 니나를 임신하면서 발레리나의 꿈을 접은 에리카(바바라 허쉬)의 꿈은 소박하다.

오로지 딸이 발레를 하면서 행복감을 느끼길 바란다.

이때 에리카의 시선에 비쳐지는 딸의 모습은 젊은 날의 자신의 모습과 동일하다.

에리카는 발레리나로서 딸의 성공을 기도하지만 한편으로는 딸을 소유하려는 강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녀에게 니나는 여전히 어린 소녀에 불과했고,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가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 마냥 불안하다.

따라서 사사건건 니나의 일에 간섭하고 참견한다.

다 큰 딸을 '이쁜이'라고 부르는 에리카는 니나의 세계를 설계한 장본인이자 모든 통제와 절제, 금욕을 강요하는 뿌리다.

니나를 임신하면서 발레리나의 꿈을 접은 그녀에게 니나는 존재의 이유이자 삶의 구원이기 때문이다.

에리카는 이 세상 누구보다 니나를 잘 알고 있다고 믿는다.

자신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질 않길 바라며 남자 만나는 것도 싫어한다.

한마디로 에리카는 니나가 순결한 백조의 이미지로 남길 바란다.

하지만, 니나의 입장에서는 엄마의 간섭이 매양 달콤한 것만은 아니다. 

엄마를 더 이상 자신을 보호하는 대상이 아닌, 자신의 여성성에 대하여 제한을 가하는 방해물로 인식을 하게된 것이다.

엄마는 관심이라 생각하지만, 딸은 간섭이라는 생각하는 것이  애정과 애증의 선을 넘나드는 이유다.

흑조를 완벽하게 표현하려고 하는 그녀의 몸부림이 심해질수록 에리카와의 대립과 갈등은 더 깊어만간다

그에 반해 뉴욕발레단의 예술감독 토마스(뱅상 카셀)는 규격과 테크닉에 사로잡혀 있는 니나에게 

"본성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유혹하라"며 사정없이 몰아붙인다. 

토마스는 조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틈만나면 니나에게 유혹의 눈길을 보낸다. 

그는 니나가 최상의 테크닉을 소유했지만, 도발적인 요소가 부족해 더 이상 발전이 없었음을 가장 먼저 깨달았다.

따라서 니나를 감싸고 있는 두꺼운 껍질을 깨고 완벽에 가까운 도약을 위해 여인의 매력을 일깨우는데 주력한다.

"완벽이라는 것은 통제가 아니라, 해방을 통해 얻어진다"라고 설파하는 그는, 

니나의 예술적인 힘을 끌어내는 최상의 조력자임을 부인할 수 없다..

여기서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니나와 토마스의 관계 설정이다.

영화에서는 토마스가 니나를 유혹하는 것처럼 그려지지만 

실상, 토마스의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것은 니나의 욕구가 훨씬 강하다.

여인으로서의 매력을 소유하지 못한 자신의 결핍을 괴로워하고, 그의 눈길을 끌기 위해 그의 주변을 서성거린다.

이런 강박관념은 그녀를 온갖 긴장감과 부담감, 엄청난 스트레스로 망상에 빠지게 만든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가지 의문!! 흑조 이미지를 간절히 원했던 니나의 진정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영화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예술의 완성을 바라는 탐미적인 이유 때문인가? 

아니면 토마스의 관심을 바라는 순수한 여인의 욕구 때문인가? 

사뭇 궁금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토마스는 니나가 매혹적인 흑조의 이미지를 갖길 바란다는 점에서 엄마 에리카와는 커다란 차별성을 보인다..

 

 

니나가 닮고 싶어한 사람은 오랫동안 뉴욕발레단에서 '프리마돈나'를 연기했던 베스(위노나 라이더).

니나에게 베스는 선망의 대상이자, 넘을 수 없는 벽이다. 

그녀를 동경했던 니나는 몰래 개인분장실에 숨어 들어 그녀가 소지했던 담배, 립스틱 등을 훔치며 

그녀가 서 있던 자리를 욕망하는 자신의 욕구를 대신한다. 

단장이 인정했던 완벽한 발레리나였던 그녀.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어가는 그녀에게 백조의 순결함을 찾아볼 수 없고, 

대신 화장으로 주름을 숨긴 추악한 흑조의 이미지만 남아있을 뿐이다.

더구나 그녀를 감싸주던 단장에게마저 버림받는 비참한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심성이 여린 니나에게 이런 베스의 불행은 자신 때문이라는 자책감을 심어주었다.

이제 베스는 니나에게 연민의 대상은 될지언정, 

최고 자리를 놓고 싸움을 벌여야하는 경쟁 관계는 아닌 것이다..

하지만 니나를 조급하게 만드는 건 자신과는 다른 매력을 지닌 릴리(밀라 쿠니스)의 등장이다.

그녀에겐 연약하고 순진한 자신과는 달리 사악하고 매혹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흑조의 양날개를 등에 문신한 릴리는 니나처럼 탄탄한 기본기와 뛰어난 기교는 없지만, 

본능에 충실한 춤사위와 형식에 얽매이지않는 자유로운 감정 표현으로 

흑조에 더 적합하다는 토마스의 평을 받는다. 

이에 니나는 어렵게 얻은 프리마돈나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더구나 토마스는 사사건건 릴리를 거론하며 니나를 몰아붙인다. 

릴리처럼 온세상을 유혹하라고 주문하는가 하면,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라며 자위를 권하기도 한다.

자신이 갖지 못한 매력을 소유하고 있는 릴리를 향한 니나의 마음은 당연히 질투와 선망을 아우른다. 

자기 자리를 뺏길까 두려워하면서도 리허설 전날 저녁 함께 술집으로 향하는 것도 그런 탓이다. 

니나는 릴리와 함께  술과 마약에 흠뻑 절은 광란의 밤을 보내는가 하면, 

엄마에 대한 반항으로 동성애를 즐기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게 니나의 망상인지, 현실인지 명확하게 구별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프리마돈나' 자리를 넘본다는 설정 또한 마찬가지다.

어쩌면 프리마돈나로 발탁되고 난 뒤, 자신을 향한 주변인물들의 시기와 질투, 

그리고 그녀에 대한 기대감 등으로 인한 압박감이 증폭되면서 니나가 만들어낸 환영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여겨 볼만한 대목은 니나-릴리의 관계설정이다.

릴리는 니나에게 자극제이자 위협이 되기도 하지만 니나가 흑조가 되는 촉매역할을 하기도 한다.

둘의 관계는 예전 베스-니나의 관계처럼 선망의 대상이지만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관계

즉, 자신이 베스의 자리를 차지한 것처럼 언젠가 자신의 자리를 꿰어찰지 모르는 위험(?)스런 관계, 

그게 바로 니나-릴리의 관계다.. 

 

 

3. 거울이 지닌 이분법적인 상징..

 

왼쪽에 보이는 그림은 피카소의 <거울보는 여자>다.

하지만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울보는 여자랑 거울에 비친 여자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거울보는 여자가 깔끔한 모습인 반면, 거울에 비친 여자의 모습은 퀭한 모습이다.

피카소는 이를 위하여 레드와 블루, 서로 대비되는 색을 이용하여 여자의 양면성을 표현하고 있다.

흔히 레드가  '정열'이고 블루가 '우울'을 상징한다면, 

피카소의 '거울보는 여자'는 겉으로는 정열을 가장하지만 속으로 울고있는 여인을 표현한 셈이다...

이처럼 거울과 여자의 상관 관계는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수시로 감시하기 위하여 거울을 손에 달고 산다.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는 여자의 마음은 복잡하다. 

그 마음에는 아름다움을 맘껏 과시하고 싶은 마음과 자신의 단점을 감추고 싶은 

앙증맞은 심리가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거울은 여성의 욕망을 대변하기도 한다.

<블랙스완>에서는 유난히 거울이 많이 등장한다.

'발레'라는 소재에 걸맞게 발레연습실 벽면이 거울 투성이고, 분장실 역시 그렇다.

거울은 도플갱어에 시달리는 니나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주요한 상징물로 활용된다.

니나는 끊임없이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고, 

관객들은 거울을 통하여 니나가 보지 못하는 실상과 허상을 한꺼번에 본다.

거울 속의 니나는 피카소의 <거울보는 여자>처럼 거울을 보는 니나와 다른 표정으로 관객들을 놀라게한다.

이때 거울은 거울 밖의 니나(백조)와 거울 속의 니나(흑조)를 구분하는 경계가 되는 셈이다.

감독은 용의주도하게 거울의 이미지를 활용한다.

왜곡된 이미지를 비추는 거울을 통해 니나의 내면 속에 숨겨진 욕망을 들춰낸다.

거울 밖의 니나가 소녀의 얼굴이라면 거울 속의 여자는 은밀한 욕망을 지닌 여인의 모습이다.

결국, 거울은 백조, 흑조를 양분하는 경계로서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셈인데, 

니나가 완벽한 경지에 이르기 위해선 그 경계를 허물어야한다.

영화에서 거울은 바로 그 벽이다.

 

 

4. 영화의 가치.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더 레슬러>가 미국적인 문화를 바탕으로 한 쇼 비지니스 세계의 비정함을 그렸다면 

이번 <블랙 스완>에서는 주연자리를 놓고 암투를 벌이는 발레리나들의 뒷모습을 조명한다.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암울한 분위기'를 지녔다. 

뭐랄까? 감독은 그 암울의 끝을 작정하고 보여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끈덕지게 주연배우들을 뒤를 쫓아 카메라를 들이댄다.

그 덕에 <레퀴엠>에서는 마치 내시경을 들이대고 주인공들의 속을 들여다본 것처럼 

마약에 찌든 그들의 장기들을 보기 싫어도 할 수 없이 봐야했고, 

<더 레슬러>에서는 늙은 레슬러 '랜디'의 눈물과, 그의 뜨거운 열정에 흠뻑 젖어드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이번 <블랙 스완>에서도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암울'은 여지없이 주인공 니나를 관통한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발레리나들의 아름답고 유연한 동작이 아니다.

대신 깨진 발톱, 핏줄이 불거진 얼굴, 손톱으로 긁은 등의 상처, 금방이라도 관절이 꺾일 것만 

같은 까치발 등을 집중적으로 클로즈업하면서 완벽해지려는 강박을 표현한다.

이런 노력 때문일까? 

2010년 9월 베니스 국제 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초청되면서 포문을 연 <블랙 스완>은 

예술성과 흥행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손에 거머쥐며 순항을 계속하고 있다. 

<블랙 스완>에 매료된 수많은 관객과 평단은 모두 입을 모아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최고의 스릴러 영화"라고 치켜 세운다. 

이처럼 <블랙 스완>이 성공을 거둔 이유는 크게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그 중 단연 돋보이는 건 나탈리 포트먼의 신들린 연기고, 

다음은 시나리오의 힘, 마지막으로 카메라 기술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 세 가지에 대해 하나하나 들춰보면.

 

 



①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 

1994년 <레옹>에서 단발머리의 애띤 소녀 '마틸다'로 데뷔한 '나탈리 포트만'은 

2005년 <클로저>로 골든 글로브 여우 조연상을 수상하기도 했지만, 

연기파 배우로 분류하기엔 어딘지 모르게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블랙 스완>에서 '나탈리 포트만'은 그런 불안을 깡그리 없애고 

니나라는 불안정한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물론 이를 위해 어린시절 발레를 배웠던 포트만은 촬영 개시 10개월 전부터 강도높게 훈련하며

혼신의 힘을 다한 발레 연기를 보여주지만, 

그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니나의 캐릭터에 

완전히 녹아든 것 같은 일체감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나탈리 포트만은 주인공 니나를 통해 인간의 순수와 욕망의 양면성을 표현한다. 

니나가 ‘백조의 호수’에서 백조와 흑조, 1인2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것처럼 

포트만 역시 인간이 가진 그 양면성을 오가며 다중인격을 통해 변화해가는 니나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혼을 담은 연기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② 시나리오의 힘... 

앞서도 언급했지만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더 레슬러>가 사람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안겨주었던 것은 

극 중 퇴물레슬러 '랜디'로 변신한 미키 루크의 연기 자체에 쏟아지는 찬사도 있었지만, 

그보다 '랜디'와 완벽하게 일치하는 미키 루크 배우의 실제 삶 때문이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최고의 레슬러가 20년 후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링 위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는 '랜디'의 모습은, 모두에게 버림받았지만 

끝까지 자신의 열정과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배우 미키 루크의 굴곡진 삶을 떠올리게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이처럼 배우의 처한 환경이나 삶과 시나리오가 일치되었을 때, 실로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발생한다.

대런 감독은 <블랙 스완>에서 역시 이런 시너지 효과를 활용하고 있다.

달라진 점이라면 <더 레슬러>에서 시나리오와 배우의 삶이 일치하는 이중겹침(?) 구조를 사용했다면, 

이번 <블랙 스완>에서는 보다 더 진화된 삼중겹침 구조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

즉, 백조, 흑조로 구분되는 '백조의 호수'의 비화에 니나(백조)-릴리(흑조)의 대결구도를 얹어 

'백조의 호수' 줄거리로 흘러가는 맥락으로 이중겹침을 완성하였고, 

순수하고 연약한 이미지의 나탈리 포트만 본인이 이번 <블랙 스완>을 통해 연기를 완성해나가는 점은 

극 중 니나와 상당 부분 일치하면서 삼중겹침 구조를 완성하였다.

이처럼 배우의 연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시나리오'에 공을 들이는 감독의 노력이야말로 영화를 성공으로 이끄는 가장 큰 힘이라고 할 수 있다.

 

 

③ 카메라 기술...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영화들은 하나같이 명작의 반열에 올라있으면서도 소위 '큰 돈'을 들인 것 같지는 않다. 

이는 달리말해 그만큼 테크닉이 뛰어나다는 말과도 같은데 

그의  빠른 편집과 현란한 카메라 워크는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특히 <레퀴엠>에서 

'주인공 네 명이 파국을 맞는 과정을 보여주던 마지막 20여분간의 숨가쁜 교차 편집'

이 기억에 남는데 이번 <블랙 스완>에서 사용한 카메라 기법도 매우 독특하다.

대부분의 장면이 클로즈업이나 재설정없이 주연배우들의 움직임을 따랐고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게 했다. 

이런 효과를 위해 이번에는 소형카메라를 들고 직접 발레리나들의 사이에서 촬영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발레리나들이 대거 등장하는 군무에서 주로 사용되었는데 카메라맨은 16mm 소형카메라를 들고, 

무용수들 틈에 섞여 말 그대로 '춤추듯' 무대를 뛰어다니며 촬영했다고 한다.

또 이번 <블랙 스완>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유독 주인공 니나의 뒤통수를 찍는 씬이 많았다는 것이다.

핸드헬드의 흔들리는 장면들은 마치 누군가 그녀 뒤를 쫓는 듯한 긴박한 느낌을 갖게 했는데

이런 기법은 거친 질감의 필름과 어우러지면서 혼란스런 니나의 내면을 표현하는데 무엇보다 효과적이었다

★★★★☆

 

 


Ex) 위에서 언급한 핸드헬드 카메라 기법이 절묘하게 사용된 예..
니나의 뒷모습을 빠른 컷으로 처리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긴장감을 잃지 않게 해주던 대런 감독의 놀라운 편집력 

(지금은 몸상태가 좋지 않으니 최종 리허설에 참석하지 말라는 어머니의 만류를 뿌리치고 연습장으로 달려나가던 씬)

 

 

 

출처 : https://m.blog.naver.com/weon2334/140124100699